전자 장부의 탄생
지난 2018년 카오스 속에서 나타난 개념 하나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블록체인이 이란 개념이다.
블록과 체인의 합성어이다. 위조와 변조의 걱정이 없는 전자 장부를 뜻한다. 블록체인 기술에서는 서로의거래 내역이 블록에 담기고 이 블록들이 체인처럼 연결되게 된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역사는 1980년대사이퍼펑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이퍼펑크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세계 전체가 격렬하고 치열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70년대에는 사회주의권과 자본주의권의 냥전체제가 절정에 오르면서 세계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몇가지큰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자본주의 세계의 맹주로 자처하던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했다.제4차 중동전쟁이 아랍권의 패배로 끝난 이후 OPEC의 아랍권 국가인 리비아, 이라크, 이란과 이집트,시리아, 튀니지가 손을 잡고 석유 수출을 줄이는 동시에 원유 가격을 인상하게 된다. 1973년 1978년에 걸친 석유 파동은 전 세계 경제를 충격에 빠뜨리고 만다. 그러면서 1979년에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일어나게 된다.
변화하는 흐름에 대항가기 위해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에 걸쳐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 정권이주도하던 신자유주의가 세계질서를 재편하기 시작한다. 40년 정도 지난 2019년 지금도 세계 여러 나라들이 국가권력의 시장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이론에 입각한 경제 정책을 펴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게 되고 소득 평준화와 완전고용을 이루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케인스 이론을 비판하였다. 자유시장과 규제완화, 민영화와 재산권 중시, 자본의 세계화와 시방개방, 사회복지 축소는 신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슬로건이었다. 실자유주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무한 경쟁을 초래하고, 분배의 악화를 가져오고, 선진국의 다국적기업들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인식이 확산되게 된다.
사이퍼펑크
사이퍼펑크는 다국적 기업과 정부 권력의 대규모 감시와 검열에 맞서 자유를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강력한 암호 기술을 활용하는 활둥가들 집단을 말한다. 블록체인기술을 통해 감시와 검열에 맞서기위해 개발한 강력한 암호기술에서 비롯되었다. 사이퍼펑크들은 뚜렷한 철학과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1980년대 통신과 인터넷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자유로운 사이버 공간과 연결망은 세계 곳곳에서 혁명의 도화선 역할을 하게된다. 이러한 흐름과 반대로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다국적 기업과 정치 권력의 탄압과 통제 기술도 최고조로 발달되어 가게 된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대규모 감시 프로그램도 세계곳곳에서 가동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이버 공간은 다국적 정보질서 체제와 다국적 기업의 헤게모니 경영장이기도 하다.다국적 기업들에게 정보라는 존재는 다국적 기업의 활동과 전략을 위한 필수불가결 요소이다. 다국적 기업들에게 정보라는 존재는 다국적 기업의 활동과 전략을 위한 필수 요소이다. 그래서 정보 자체를 상품으로 보며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대상이라는 관점에서 정보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추구하려고 하게된다. 운영체제의 마이크로소프트와 2000년대 검색의 구글과 소셜 미디어의 페이스북조차 유대인 창업자가 시작한 글러벌 차원의 다국적 기업이다.
사이퍼펑크라는 말은 사이버펑크라는 개념에서 시작되었다. 윌리엄 깁슨의 소설 뉴로맨서가 파생기킨 새로운 공상과학 장르를 뜻하고 있다. 신 대항문화 운동을, 그리고 이런 운동에 참여하고나 동조한 집단 또는 개인을 가리킨다. 이런 활동은 깁슨과 친구 사이버인 브루스 스터링이 운영하는 뉴스레터 그룹을 중심으로 이미 벌어지고있었다. 하지만 아직 용어가 존재하지 않을 뿐이었다.
소설 뉴로맨서에는 케이스라는 이름의 컴퓨터 카우보이, 즉 해커가 등장을 한다. 그는 해킹 활동 때문에 자신의 고객에 의해 신경 체계가 손상되게 된다. 더 이상 사이버 공간에 접속할 수 없게 된 그는 일본 치바현 치외법권 지역에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수수께끼의 아미티지라는 사업가가 접근해서 그에게 예전의 힘을 되 찾을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을 했고 1980년대 이후 등장한 과학 소설의 한 장르로서 표현이 되게 된다. 이때부터 사이버펑크는 사이버시대의 저항문화 또는 그 활동가들을 상징하게된다. 깁슨에게 사이버 스페이스는 일종의 가상현실이다. 사이버 스페이스를 통해 접근하는 공간, 즉 컨퓨터 네트워크,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데이터에 의해 구축되는 가상 공간을 깁슨의 매트릭스라
불렀다. 현재 사이버 스페이스는 전 지구적인 네트워크로 구축된, 컴퓨터에 의해 유지되고, 컴퓨터를 이용해 접근할 수 있는, 그리고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다차원적인 인공 현실 또는 가상현실로 정의 된다. 이 세계관은 릴리 위쇼스키와 라나 위쇼스키 감독의 영화 메트릭스에 잘 반영되어 있다.
사이버펑크는 과학과 기술에 대해 무정부주의적이고 급진적 반항적 분위기가 풍긴다. 발달된 과학기술과 이에 따른 사회적 병폐, 부조리, 계급 갈등 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사이버네틱스와 1970년대식 반항적 패션경향이었던 펑크를 합하여 만든 낱말로 브루스 베스키의 단편 사이버펑크에서 이 용어는 공식적으로 탄생하게 된다.
정부와 은행이 없는 자유로운 거래
사이버펑크 활동은 통제와 권력의 상징이자 다국적 기업과 손잡은 정부 역할과 행위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지게 된다. 정부는 개인이 컴퓨터와 정보를 가지고 어떤 행위를 하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나오게 된다. 사이버펑크는 법의 외부에서 움직이게 되는데 중앙집권화된 국가와 기업구조에 대항하고 관련된 개인들의 필요에 따라 봉사를 하는 과학과 기술의 탈중앙집권화 되고 하위문화적이며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옹호한다. 프라이버시도 사이버펑크 자유주의가 내거는 주요 가치 중의 하나이다. 사이버 펑크 운동은 정부가 개인의 사생활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암호체계를 개발하고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이퍼펑크는 암호에 저항을 상징하는 펑크를 붙여서 만든 합성어이다.
1980년대 데이비드 차움 박사가 디지캐시와 함께 평판시스템 등 익명 거래 시스템을 제안했다. 1992년에는 에릭 휴즈, 티모시메이, 존길모어에 의해 사이퍼펑크 모인이 사작되었다. 미국 수학자이자 프로그래머로 사이퍼펑크 운동 창시자 중 한 명인 에릭 휴스는 1993년 발표한 사이퍼펑크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프라이버시를 원하기 때문에 거래 당사자는 해당 거래에 직접 필요한 정보만을 알고 있어야한다. 공개사회에서의 프라이버시는 익명의 거래 시스템이 필요하다. 프라이버시는 전자 기기 시대에 열린 사회를 위한 필수 가치이다. 정부나 기업 또는 다른 얼굴 없는 거대 조직들이 우리 프라이버시를 보장해 줄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 우리 프라이 버시는 우리 스스로 보호해야 한다. 열린 사회에서는 프라이버시에 암호화가필요하다.
사이버펑크들은 정부의 권위를 대처할 수단을 암호에서 찾게된다. 1980년대 이후 암호기법은 새로운 변화를 맞게되었다. 휘필드 디피 박사와 마틴 헬만 박사가 데이터 암호화 표준과 공개키 암호 기술을 발표하면서 암호는 민간 부문에서도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다. 개병돼어 있는 공개열쇠 암호체계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공개열쇠에 의한 암호체계가 등장하면서 작정살 수는 있어도 암호해독은 어려워 졌다. 쉽게 말해 공개열쇠를 이용, 암호문을 만들 수는 있어도 비밀번호가 없으면 암호화되기 이전의 문장은 알 수가 없게된 것이다.
그 결과 사이버펑크의 노력은 정부나 은행과 같은 공인기관이 없어도 암호를 통해 양자간의 거래의 신뢰성을 확인할 수있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을 열었다. 이 블록체인의 과정에서 생성된 데이터들은 P2P방식으로 나누어 진다. 분산된 데이터는 누두고 임의로 수정할 수 없고, 누구나 변경의 결과를 열람할 수 있으므로 데이터 위조와 변조를 방지할 수 있어 보안성이 매우 높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은 누구도 왜곡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것과 같은 원리일 것이다.
1970년대 이전까지 암호는 주로 정부기관들이 비밀리에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이 시절의 암호 기술은 대칭키 암호 시스템이었다. 암호문을 생성할 때 사용하는 키와 암호문으로부터 평문을 복원할 때 사용하는 키가 동일한 암호 시스템이다. 암호 시스템의 안전성은 키의 길이, 키의 안전 관리에 상대적으로 의존성이 높다. 암호문의 작성자와 이의 수신자가 동일한 키를 비밀리에 관리해야 하므로 폐쇄적인 특선을 갖는 사용자 그룹에 아주 적합한 암호 시스템이다.
시간이 흐르고 사이퍼펑크 모인은 블록스트림, 해시캐시, 디지캐시, PGP, SSL등 중요한 암호 및 거래 기술을 만들었다. 1997년 아담 백이 창안한 해시캐시는 익명성을 보장하고 이중 지불을 방지할 수 있는 가상화폐였다. 해시는 한 방향 계산은 쉽지만 역방향 계산은 매우 어려운 특징을 가진 함수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확산
1998년 웨더 데이는 B화폐, 닉 재보는 비트골드를 통해 익명의 개인 간 계약을 체결하는 분산형 통화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햇다. 이는 각 참여자가 B화폐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모든 참여자의 별도 데이터베이스에 해시함수로 암호화해 서로 연결된 블록으로 저장하게 한다는 점에서 블록체인 개념과 상당이 유사 했다. 그는 거래 발생에 의해 새로운 블록을 추가할 때 가장 먼저 암호를 풀어 성공한 참여자에게 B화폐를 인센티브로 주는 작업증명과 보유한 가상화폐의 양에 따라 일부 참여자에게만 우선적으로 인센티브를 주는 지분증명 방법도 제안했다. 작업증명은 현재 비트코인과 같은 대부분의 가상화폐가 채택한 방식이며, 일부 다른 가상화폐는 지분증명 방식을 채택하기도 한다.
블록체인은 해시캐시 기술을 활용해 작업 증명을 할 뿐만 아니라, 블록과 블록을 해쉬로 연결하고 블록체인의 신뢰가 강화 되도록 네트워크 참여의 경쟁적 검증을 유도할 수 있어서 데이터를 안전하게 거래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한다.
2004년 할 피니는 해시캐시를 사용해 재사용 가능한 작업증명을 만들었다. 비로소 가상화폐의 근간이 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만들어진 것이다.2005년 닉 자보는 이를 이용해 비트골드라는 가상화폐를 제안했다. 비트골드는 총액을 제한하지 않았으나, 비트골드를 만들기 위해 동원된 계산량에 따라 가치가 정해졌다. 드디아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가 해시캐시와 비트골드를 발전시켜 비트코인을 창안했다. 거래의 자유를 향한 사이퍼펑크의 오랜 노력이 결실이 맺어진 것읻가.
나카모토는 2009년 오픈소스 비트코인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설치해 최초의 블록을 만들고, 50비트코인을 채굴한 뒤 할피니에게 10비트코인을 주었다. 이후 소수의 암호연구자와 프로그래머가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주고 받았으나 거래량이 많지 않아 실물가치가 형성되기는 쉽지 않았다. 비트코인 최초의 실물거래는 2010년 어떤 프로그래머가 피자 두판에 1만비트코인을 지불하면서 시작되었다. 2011년 위키리크스, 전자 프론티어 재단 등 비영리 재단은 비트코인으로 기부를 받기 시작하였다. 상품 및 서비스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는 곳이 점점 늘어나가 시작했다.
블록체인의 요체는 P2P 네트워킁레 분산시켜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자료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기술이 있다. 중앙 관리 자체가 없는 것이다. P2P컴퓨팅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모든 컴퓨터가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기능을 하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동등한 동료간에 이루어지는 개별적인 컴퓨터 간, 다시 말해 P2P의 기본 조건은 연결된 컴퓨터들간 사용자들간의 동등한 관계이다. 원래 컴퓨터의 네트워크인 인터넷은 서로 동등한 수평적 연결망이었고, 그곳의 참여자끼리 평등한 공유와 나눔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철학이 깔려있다.
2018년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암호화폐 수는 1600여개를 넘어섰고, 현재 많은 국가들과 글로벌 기업들, 그리고 금융기관들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에 뛰어들고 있다. 단순한 개인간 거래를 넘어서 글러벌 차원의 결제 방식으로 활용되는 사례들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국적 기업과 국가 권력, 그리고 금용자본의 통제와 감시로 부터 자유로워 지려던 사이퍼펑크들의 꿈은 지금 어떠한 의미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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