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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때있는 신기한 잡학사전

비트코인은 돈이 될 수 있을까?

by 효능을알려주는남자 2019.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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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짜리 지폐를 생각해본다.

세종대왕이 그려진 녹색의 종이 아니 정확히는 솜 이것을 한장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약 70원 정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고민 없이 만원으로 알고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화폐의 가치는 화폐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로부터 발생하게 된다. 그럼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런 맹목적인 믿음을 화폐에 가지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자.

 

화폐의 시작을 알아본다.

화폐의 시작은 6천년 전 농기구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먹고 생활하고 남을 만큼의 생산물이 발생하던 시기이다. 사람들은 잉여 농산물을 다른사람들과 교환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닭을 키워 돼지를 사고 싶다고 생각해보자. 다행히 거래를 원하는 상대를 만나면 쉽게 교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돼지 주인이 원하는게 소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처럼 화폐가 없으면 자신과 반대의 거래를 원하는 상대가 있어야만 거래를 할 수 있다. 행여 운 좋게 맞는 거래 상대를 만나도 교환은 순조롭지 않다. 서로 생각하는 가치가 달라서이다. 나는 닭 20마리와 돼지1마리를 바꾸고 싶은데, 돼지주인은 닭50마리와 교환을 원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런 불일치 문제를 해결할 물건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탄생한게 화폐이다. 먼저 물건을 교환하면서 자연스럽게 물건 사이의 가치를 비교했다. 이때 비교 기준으로 자주 사용하는 게 생겨났고, 이게 자연스럽게 화폐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예로 돼지를 원하는 닭 주인이 닭과 쌀로 바꿔 돼지 주인에게 준다. 돼지 주인은 받은 쌀로 말을 산다. 이 경우 쌀이 화폐의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게 가치의 기준과 거래의 수단으로 돈의 역할을 대신 하는 물건을 상품화폐라고 한다. 처음에는 곡물, 가죽, 옷감 등 생필품이 상품화폐로 많이 쓰였다.

 

그런데 상품화폐는 무겁고 부피가 크면 들고 다니며 거래하거나 집에 쌓아두기가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점차 보관과 운반이 용이한 동물의 뼈나 장신구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화폐에 가치의 기준과 거래의 수단이라는 기능 외체 보관이라는 역할이 더해 지면서이다. 가장 대표적인게 조개껍데기이다. 중국에서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사용해 왔다.

 

화폐의 발달 과정을 알아본다.

사람들은 더 작고 단단한 돈을 원하기 시작했다. 마침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며 정해진게 금속이다. 일단 금속은 조개껍질보다 단단하면서 오래간다. 기술이 더 발달한 뒤에는 똑같은 크기로 잘라 쓸 수도 있었고, 필요하면 다시 한 데 모아서 녹이면 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주로 청동과 철로 돈을 만들었다. 구리로 만든 쟁기와 철로 만든 칼이 이때부터 등장했다.

 

본격적으로 금속화폐의 시대를 연 것은 금과 은이었다. 일반적인 금속 화폐의 장점뿐 아니라 매장량이 적어 수급 변동이 크지 않아 희소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쉽게 녹이 슬거나 변하지도 않고 보기 좋게 반짝인다. 물질적 틀성 외에도 사회,종교적 상징성을 갖춘 점도 화폐로 채택되는 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화폐로는 더 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었다.

 

하지만 금과 은이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양으로 쓰이지 않았다. 초기에는 댕강댕강 잘라서 사용했었다. 그래서 이 금이 얼마만큼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무게를 달았다. 이를 칭량화폐라고 한다. 무게를 재서 가치를 정한다는 뜻이다. 영국의 화폐 단위 파운드나 과거 유럽 국가들의 화폐 이름이었던 마르크,리브르,리라 등은 금,은의 무게를 달았던 시절의 흔적이다.

 

그대도 물건을 사고 팔때마다 무게를 다는 건 너무 힘들었다. 사람들은 금과 은의 크기와 모양을 조금씩 맞춰갔다. 그게 바로 bar 형태의 괴 이다. 일정한 무게와 순도를 확인했으니 믿고 쓰라는 의미로 인장도 찍게 되었다. 그러나 또 금괴, 은괴는 너무 무겁다. 또 자잘한 거래를 하기에 가치가 너무 크다. 사과 하나 사고 싶은데 수표만 들고 다녀야 하는 꼴이다. 사람들은 기어이 작고, 똑같은 모양,무게를 가진 금과 은 덩어리를 만들어 냈다. 드디어 동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2500년 전 지금의 터키 지방인 리디아에서 세계 최초로 오늘날의 동전과 같은 동그란 형태의 금,은화를 만들어 냈다. 호박금이라 불리는 동전이다. 이를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널리 퍼뜨리게 된다. 무역 용도뿐 아니라 동전을 만들어 수익을 남기는 주조 차익을 얻거나,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규모로 화폐를 주조했다. 국가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만든 시초이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이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면서 생긴 전리품인 금과 은으로 통일된 화폐를 만들어 유통시키게 된다. 화폐량의 증가와 화폐의 보편적 사용으로 교역이 늘고 경제적 번영과 통합의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화폐의 급격한 증가로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로마 제국이 그리스가 만든 정복 후 화폐발행의 바통을 이어 받게된다. 특히 초기 로마는 대외팽창 정책 덕에 정복지에서 지속적으로 금,은을 공급 받았다. 화폐 발행도 증가 하게된다. 다만 이 때는 교역도 크게 늘어나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1세기가 넘어가면서 금,은이 부족해졌다. 영토 확장이 중단되고 식민지였던 스페인의 금,은 광산도 바닥을 드러내면서 부터이다.

 

통치를 위한 재원이 필요했던 로마 황제 네로는 금,은화의 순도를 줄이거나 도금된 화폐를 만들어 재원을 충당하였다. 사람들은 금을 믿이 못할 돈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화폐 가치는 하락하게 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 된다. 시중에 유통되는 진짜 금,은화도 줄었다. 금화를 화폐로 쓰기보다 그걸 녹여 금을 만들어 파는 게 더 이득이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화폐는 암흑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화폐를 발행할 만한 중앙 권력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중세의 충성과 보호의 약속 중심의 봉건제도, 농지와 수확물의 노동의 대가로 지불하는 장원제도의 특징은 화폐의 침체를 부추겼다. 재화의 거래와 부의 축적이 없으면 화폐는 무용지물이다. 이 시기 거래와 축적은 지배계층의 전유물이 되었다. 이로 인해 금화 주조는 중단되고, 그나마 유통되는 은화의 순도도 점점 낮아지게 된다.

 

동양으로 시선을 돌려 보면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화폐로서의 금이 발달하지 않았다. 금 매장량이 많지 않아서이다. 대신 구리 동전이 쓰이고 있었다. 이 동전도 서양보다 약500년 늦게 등장했다. 최초의 동전은 진시황제의 원형방공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전은 고려 성종때 만들어진 건원중보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를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동전은 널리 쓰이지 않았다. 대신 곡식과 옷감을 화폐 용도로 사용하였다. 상풍화폐의 시대가 오래 지속된 셈이다. 관리들의 녹봉도 이것으로 지급되었다. 세상대왕이 화폐 대중화를 추진했지만 반발만 사기도 하였다. 사농공상의 법도에 따라 상거래나 무역이 활발하지 못했던 탓이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후에야 경제체제 변화로 화폐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화폐는 거래를 위한 도구이다. 거래 자체가 없으면 화폐의 쓰임새도 줄어들게 된다. 반대로 상거래가 활발해지면 화폐는 빛을 발한다. 유럽에서 금화가 다시 고개를 든 건 14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무역이 발달하면서이다. 이로 인해 유통되는 금화의 양과 종류가 늘었다. 원활한 무역 거래를 위해 서로 다른 금화의 가치를 평가할 전문가가 필요했고 금 세공인들이 이 역할을 맡았다.

 

14세기 금화 유통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금이 부족한 건 여전했다. 이 갈증을 풀어준게 15세기의 신대륙 발견이다. 1500~1800년 매장량이 풍부한 남비에서 유럽으로 흘러 들어간 금은 2500톤에 이른다. 세계 금 생산량의 70%에 달하는 양이다. 이 때 식민지를 통해 유입된 금을 바탕으로 스페인은 강대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물론 금이 스페인에게 행운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금이 대량 유입된 만큼 엄청난 물가 상승의 고통도 겪어야만 했다. 금화의 유통량이 상품의 공급량과 균형을 이루지 못한 탓이다. 더구나 금을 노린 해적 탓에 영국과 전쟁을 벌이기도 하였고 칼레 해전에서 패하면서 패권을 영국에 넘겨줘야만 했다. 금 물량 증가의 여파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금화 가치 하락에 따른 지속적인 물가 상승은 지대 수입에 의존하던 봉건 영주들에게 큰 타격을 주면서 봉건주의 시대의 종말을 앞당겼다. 또한 새로운 화폐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보관증이라고 쓰인 종이 한장이 상인들 사이에서 지불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보관증에 이름이 적힌 사람만 지불되던 것이 보관증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지불 받을 수 있게 됐지 때문이다. 예를 들어 a는 b에게 금화 대신 금 보관증을 준다. b가 이 보관장을 금 세공인에게 가서 보여주면 금 세공인이 금과 교환해주는 식이다. 점차 이를 이용하는 상인이 늘었고 결국 이 보관증은 유럽 최초의 지폐가 되었다.

 

여기서 수익이 발생하자 많은 금 세공인은 세공 일을 관두고 보관에만 전념하게 된다. 보관증 만큰의 실제 금이 필요 없다는 걸 안 뒤에는 웃돈이나 사용료를 받고 실제 맡긴 금 이상의 보관증도 발행했다. 현대적 개념의 은행과 대출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보관증은 보통 다량의 금화에대한 증표이다. 당연히 금화 하나하나보다 높은 금액을 표시한다. 지폐가 금화보다 비싸다는 이야기다. 이 때부터 동전은 잔돈신세가 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국가가 정한 지폐가 만들어지기 전단계이다. 각 지폐는 발행한 은행에 따라 달랐고 그 은행에서만 교환을 할 수 있었다.

 

국가에서 정한 단일 법정 지폐와 중앙은행은 영국에서 처음 탄생했다. 법정 지폐와 중앙은행의 탄생 배경은 그리 순수하지만은 않았다. 옛날 로마와 그리스가 통치 재원 마련을 위해 동전을 만든 것처럼 영국 정부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집권한 윌리엄3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재정이 궁핍해지자 지폐를 발행하기로 결정한다. 이를 위한 돈마저 없어 상인들로부터 자금을 차입하고 공동출자 방식으로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을 설립하고 파운드화를 찍기 시작했다.

 

애초 파운드화는 민간 지폐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정부를 등에 업은 파운드화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졌다. 1773년 이를 우조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법이 제정되면서 법으로 보호받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1844년엔 영란은행을 제외한 은행의 지폐 발행을 금지해 독점적 화폐 발행권이 성립되었다. 영국에서 국가가 지폐 발행으로 재정을 확충하는 성공 사례가 나오자 주변국도 하나 둘 중앙은행과 법정 지폐를 만들었다.

 

영국과의 무역에서 만성 적자를 보던 미국도 자체 지폐를 발행했다. 다만 이 경우는 이를 교환해줄 금,은 등의 준비금 없이 신용만으로 만든 화폐이다. 당연히 이 화폐의 가치는 매우 낮았다. 식민지였던 미국 정부의 과도한 화폐 발행은 영국 의회의 발행 제한 및 금지 조치로 이러져갔다. 결국 이는 미국의 불만을 사서 독립전쟁의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미국은 한참 뒤 자국 경제가 안정된 뒤에야 법정 지폐를 재발행 하기 시작했다.

 

17세기에는 예금 화폐가 등장했다. 은행에서 고객들에게 계좌를 개설해주고 계좌 간 이체를 해준 것이다. 실제 돈은 오가지 않았다. 이런 이체를 실행해 달라는 의뢰서가 바로 수표이다. 수표는 화폐의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 나갔다. 실제 존재하는 잔고 이상이 화폐를 시중에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예금 화폐라도 그 실제 가치는 금과 은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의존해 가고 있었다.

 

18세기 은이 중국,인도로 다량 빠져나가자 영국은 금과의 교환성에 기초해 지폐에 가치를 부여했다. 이른바 금 본위제이다. 금본위제가 없다면 지폐는 금화와 달리 그림 그려진 종이 쪼가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영국 정부는 1921년 지폐를 금으로 바꾸어준다는 금 본위제를 명문화하면서 지폐에 부여된 신뢰를 확립했다. 이후 당시 강대국들은 모두 차례로 금 본위제를 선언하게 되었다.

 

금본위제는 상당히 안정된 시스템이었다. 금에 대한 믿음이 유지되는 이상 안정적으로 돈의 가치가 인정된다. 금없이는 쉽게 찍거나 없앨 수 없어 통화량의 급격한 변동도 막을 수 있었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 전까지 금본위제는 국제 금융 시스템을 잘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각국 정부에 급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보유한 금 이상의 돈을 찍어야만 했다. 결국 금본위제의 맹주였던 영국을 시작으로 유럽 각국이 금본위제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유럽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금본위제를 포기한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 다시 금본위제를 선언했다. 달러를 가져오면 금으로 바꿔준다는 것이다. 이른바 브레턴우즈 체제의 시작이다. 본토에 전쟁 피해를 입지 않은데다 참전 대가로 금을 두둑하게 챙겼고, 자국의 금광 개발까지 더해진 덕분이다.

 

당시 미국은 세계 금의 약80%를 쥐고 있었다. 너도 나도 금에 기반한 안정된 가치의 달러를 원했고, 이 때부터 미국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 역활을 했다. 그러나 브레튼우즈 체제는 오래 가지 못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면서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차 세계대전 떄와 같이 미국은 거추장스러운 금본위제를 1971년에 벗어 던지게 된다.

 

이 때부터 화폐 가치와 금과의 관게는 끊어지게 된다. 지금과 같은 명목화폐 또는 신용화폐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금과 같은 실물의 가치와 연계되지 않으면서 정부의 신용을 근거로 유통되는 화폐이다. 어떤 나라 경제가 흔들릴 때 화폐가치도 덩달아 급락하는 이유이다. 실물 근거가 필요 없으니 정부는 화폐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통화 관리가 까다로워지게 된다.

 

전자화폐의 등장

오늘날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전자화폐이다. 화폐는 더 이상 실체를 갖추지 않고 카드를 통해 계좌에서 계좌로만 이동하게 된다. 금속을 대체했던 지폐는 데이터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이제 세계 전체 통화 중 지갑과 호주머니에 든 화폐의 양은 극히 일부이다. 각종 가상화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보안과 표준화 문제로 통용되지 않지만 앞으로 사용 범위가 넓어질 가능성이 많다.

 

앞으로의 화폐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람들은 전통 화폐가 사라질 거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아예 금본위제로 돌아가거나 세계 단일 화폐가 등장할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도 이런 수만은 가능성 중 하나이다.

 

비트코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애용된 화폐인 금과 비교해보자. 비트코인이 화폐로서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은 누구 하나가 마음대로 엄청난 양을 찍어 낼 수 없다는 것, 즉 희소성의가치와 안정성이다. 네트워크상의 데이터인만큼 녹이 슬게되고 변하지 않는다.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가치로 범용으로 쓰일 수도 있다. 금이 가졌던 장점 말이다.

 

다만 차이점도 있다. 녹이 슬거나 변하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물건에 사람들이 쉽게 믿음을 가질수 있을까. 금과 달리 손에 잡히지 않는 물건이라 해킹이나 오류를 불안해하진 않을까. 금은 본래 화폐 외에도 장신구 등으로 활용 했지만 비트코인은 돈이라는 용도 말고는 쓸모가 없다.

 

결국 화폐의 역사를 통해 비춰본 미래화폐의 과제는 너무 간단하다. 어떻게 화폐의 근본인 이것이 가치가 있다는 공통된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다만 여기에 정치,경제,사회 상황에 따라 화폐를 활용하려는 각국 정부의 속내가 변수가 될 수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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